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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책읽기] 시읽기 고정희 집소소한이야기 2021. 6. 23. 23:12728x90반응형
집
고향집 떠난 지 십수 년 흘러 어머니, 스무 번도 더 이삿짐을 꾸린 뒤 가상하게도 이 땅에 제 집이 마련되었습니다 경기도 안산에 마련한 이 집, 서른일곱의 나이에 가진 이 집, 열쇠를 가진 지 두 해가 넘도록 아직 변변한 집들이 한번 못하고 동당거려온 이 집에 어머니, 오늘은 크낙한 고요와 청명이 찾아오고, 구석구석 청소를 끝낸 후 저 들판 마주하여 마음을 비워내니, 간절한 사람, 어머니가 이 집에 들어서는 꿈을 꿉니다 어머니가 이 집을 돌아보는 꿈을 꿉니다
공부방 둘러보고 이부자리 만져보고 유리창 활짝 열어 햇빛 들여오시며 이제 네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해거름녙 강물처럼 웃으시는 당신, 그 얼굴 그리워 모서리칩니다 그 얼굴 보고 싶어 가슴 두근거립니다
왜 그닥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불현듯 상경하신 지난 가을, 얘야, 이승길 마지막 나들이다 네가 사는 문지방 넘어보고 싶구나 왜 단호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바쁘다 매정하게 돌아서는 저에게 그냥 탈진한 사람처럼 손흔들며 그래 내년 봄에 다시 오마 해놓고선 정작 꽃삼월엔 아주 가시다니요 이게 살아 있는 날들의 아둔함인가 싶어 하염없는 눈물만 못이 되어 박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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