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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책읽기] 시읽기 고정희 유채꽃밭을 지나며소소한이야기 2021. 6. 21. 22:36728x90반응형
유채꽃밭을 지나며
어머니, 이제 더는 말이 없으신
어머니
당신의 시신을 뒷동산 솔밭에 묻고
제 가슴에도 비로소 둥긋한 봉분 한 구 솟아버린 채
서른아홉의 짐을 끌고 고향을 하직하던 날
소리나지 않게 울며
대문 밖에 서계시는 어머니와 손 흔들던 날
저산리 모퉁이를 돌아서던 제 시야에
오늘처럼
눈부시게 흔들리는 유채꽃밭을 보았습니다
백야리를 지나고 배드레재 지날 동안
저를 따라오던 유채꽃밭에는
호랑나비 노랑나비 훨훨 날아들어
이 세상의 적멸을 쓰러뜨리며
찬란한 화관을 들어올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화관을 들어올리고 있었습니다
제발 가슴속의 봉분을 버려라
찾아오면 떠나갈 때가 있고
머물렀으면 일어설 때가 있나니
사람은 순서가 다를 뿐이다
유채꽃밭 속으로 걸어가던 어머니
그날처럼 오늘도
산천솔기마다 유채꽃 흐드러져
무겁고 막막한 슬픔을 쓰러뜨리며
이 세상의 적멸 끝으로
아름다운 하늘자락 흘러가고 있습니다
따스한 봄햇살 따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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