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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책읽기] 나우웬과 함께 하는 아침소소한이야기 2019. 8. 16. 23:26728x90반응형
나우웬과 함께 하는 아침
[밑줄 그은 부분을 공유합니다]
때로는 기도 중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30분씩 사랑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훈련을 해나간다면 서서히 당신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매우 온유하며, 부드럽고 은밀합니다. 그것은 주의를 끌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는 또한 매우 끈질기고 강하며 깊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을 철저하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희망의 모체는 인내입니다…
인내라는 단어는 고통받는다는 뜻을 가진 파티오르patior에서 나왔습니다. 기쁨과 슬픔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은 같은 순간에 태어납니다.
은혜라는 가장 온전한 선물은 자유라는 가장 온전한 선물과 함께 주어집니다. 나는 예수님과 가까워질수록 더욱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당신 속에는 양과 사자가 있습니다. 영적 성숙이란 이 양과 사자가 함께 뒹굴며 지내도록 해주는 능력입니다. 영적인 삶을 사는 요령은 당신의 사자와 양을 둘 다 온전히 인정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당신의 책임들을 벗어 버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편안함을 느낄수록, 책임 있는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의 사명을 더 자유롭게 인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에게는 하나님을 위해 완수할 독특한 임무가 있음을 인정할수록, 당신의 깊은 필요가 충족되도록 마음을 더 잘 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고독solitude of heart이 없으면 다른 사람과 관계는 쉽사리 빈곤해지고 욕심을 내어 무엇인가를 바라게 되며, 집착하고 매달리게 되며, 의존적이고 감상적으로 되며, 상대방을 이용하려 하고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고독이 없이 우리는 다란 사람을 자신과 다른 존재로 경험할 수 없고, 우리의 숨겨져 있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기쁨 가운데서 외로움을 기억할 수 있다면 나중에 외로움 가운데서도 기쁨을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더 강인해져서 그것과 대면하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내 마음의 눈을 주님께 고정시키느냐 하는 문제와 비교할 때, 실로 하찮은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올바른 장소나 올바른 직업 같은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에서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결코 상황 자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마음의 상태에 근거한 것입니다. 내가 주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알 때에는 항상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그러나 불평과 정서적인 욕구들에 휘말려 있을 때는 항상 불안하고 마음이 나누입니다. 온전히, 무조건적으로, 두려움 없이 주께로 향하겠다는 것이 훌륭한 결정입니다.
갑자기 당신이 얻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을 때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물론 바로 회복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후퇴와 퇴보를 겪어야 할 겁니다.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소한 순간들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시 당신 안에 있는 집으로, 고독의 장소로 돌아가십시오. 겉으로는 무해하게 보이는 이탈에 빠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경계하십시오. 늪에 빠졌을 때보다는 길섶에 있을 때 다시 돌아가기가 더 쉽습니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재난은 가까운 곳에서의 가벼운 사고보다 더 영향력이 적고, 사람 사이의 작은 말다툼은 세계적인 재난보다 더 화를 돋웁니다 ….
진실로 위대한 신비는 작고 때로 너무나 보잘것없는 몸짓이 내 마음을 그토록 엄청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 닿는 길은 항상 조용하고 온화한 길인 것 같습니다
기도하며 삶을 꾸려 가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생기(성령)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자기 삶을 새롭게 하고 더 확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시 자유롭게 숨쉴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다시 한 번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제 그를 따라다니는 두려움은 없습니다.
안전을 확복하기 위해 현재의 구체적인 상황을 굳게 붙잡고 있을 때, 믿음이 적은 기도를 하게 됩니다. 믿음이 적은 기도는 즉각적인 만족을 간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소원 성취를 위한 기도에는 구체적인 욕망을 만족시켜 주기를 원하는 산타클로스 식의 단순함이 있습니다 ….
믿음이 적은 사람은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으려는 아이처럼 기도합니다. 그는 선물에 손을 대자마자 흰 수염을 기른 이 신사와는 더 이상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합니다. 선물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그것을 주시는 분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입니다.
고독 가운데서 우리는 소유에 대한 환상을 벗어 버리고, 우리 자아의 중심에서 삶이란 우리가 정복한 결과가 아니라 주어진 선물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소유보다 훨씬 중요하며, 존재는 우리 노력의 결과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고독 가운데서 우리는 삶이란 지켜야 할 소유뮬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나누어야 할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묵상하는 사람은 주변의 사물들을 많이 둘러보기보다는 그것들을 통해 그 핵심을 봅니다. 물상이란 건설된 세계에 대한 반응입니다. 위대한 묵상가들이었던 헬라교부들이 투시하는dioretic 교부들로 알려져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디오라오diorao란 꿰뚫어 보는 것, 간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합니다. 이것은 그 말씀이 성스러우며, 성스러운 그 말씀은 그것이 가리키는 것을 현존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흔히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을 듣고 나가서 삶을 변화시키라는 훈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온전한 능력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삶에 적용할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을 듣고 있느 그 때 우리를 변형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중에 어느 날 우리가 일상 생활에 적용할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우리가 귀기울일 때 또 그 귀기울임을 통해 우리를 치유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길에서 우리를 만나 성경을 설명해 주실 때 우리는 우리를 창조한 그 말씀이 또한 우리를 치유하리라고 신뢰하면서 전 존재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고자 하시며 그래서 두려움에 찬 우리 마음을 철저히 변화시키고자 하십니다.
오, 하나님 오셔서 저를 도와주소서, 나의 주님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등과 같이 간단히 그리고 쉽게 반복하는 기도는 서서히 우리의 마음에서 혼잡한 내적 생활을 몰아내고 그 안에 하나님과 함께 머물 조용한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기도는 마음으로 내려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사다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말로 기도해야 할지는 우리의 필요와 그 순간의 처지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성경 말씀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기도는 또한 상상하는 것과 관계가 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때 그분을 여러 모습으로 상상합니다. 나는 진정한 기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되게 해준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묵상할 때 우리의 모든 감각을 사용하라고 제안한 성 이그나티우스는 우리가 하나님의 실재를 가능한 한 온전히 상상하여, 그 실재에 의해 우리도 서서히 신성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성화란 모든 기도와 묵상의 목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신성화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 20
한 가지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기술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암기하다 know by heart는 표현은 기억의 가치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암기하는 기도문이나 시편이 너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나는 위기 상황에서 나를 인도해 줄 하나님의 말씀 없이 나 자신의 무질서한 생각에 의지해야 할까 봐 두렵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해 아버지와 관계를 자신의 사역 중심으로, 또 시작과 끝으로 간주하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모든 말과 행동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오셔서 아버지께로 가셨으며, 바로 아버지 집에 우리를 위한 처소를 마련하고자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관계는 그분 사역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기도나 하나님과 만남을 위한 날 혹은 침묵하는 시간들을 우리의 영적인 건강을 위한, 영적인 재충전을 위한 또는 사역에 힘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거나 그렇게 이해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오히려 그런 것 자체가 바로 사역입니다
주님, 제게 믿음을 주십시오 당신의 끝없는 자비와 한없는 용서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선하심을 믿는 믿음을 주십시오. 당신에게서 달아니지 말고, 당신께서 나의 주, 나의 목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가 되시기를 구하며 다시금 당신께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오 주님, 나를 당신의 날개 아래 품으시고 내가 당신께 용서를 구하는 한 당신이 나를 거부하지 않으실 것임을 알게 해 주십시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낮아지심이 어떻게 높아지심이 되는지 볼 수 있습니다. 들려야 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치욕으로 십자가에 달린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실 것을 뜻합니다.
주님, 저의 어두운 과거에서 저를 자유롭게 해 주십시오. 저는 종종 깊은 우물 속으로 들어가듯,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당신은 당신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더 이상 어두움에 거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빛이십니다. 주님 제계 계속 당신의 빛을 보여 주시고, 이제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일어나 당신을 따를 수 잇는 힘을 주십시오. 당신은 나의 힘이시요, 피난처시요, 방패십니다. 제가 당신께 시선을 고정하는 한, 과거의 사건과 과거의 행동 패턴과 과거의 생각들로 돌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의 빛 가운데서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저로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되게 하소서, 아멘
하나님은 우리의 손이나 지성으로 만든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분이며 자신의 사랑의 손으로 우리를 만드신 분입니다.
인간의 손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손은 창조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으며, 어루만질 수도 있고 때릴 수도 있습니다. 환영의 표시를 할 수도 있고 비난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축복할 수도 있고 저주할 수도 있으며, 치유할 수도 있고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구걸할 수도 있고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손은 안전과 보호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협박하는 주먹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가장 두려운 것일 수도 있고 가장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논쟁들이 진리에 대한 영적 탐구라기보다 권력 쟁취를 위한 정치전과도 같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단순히 이 시대의 불붙은 이슈들에 대하여 박식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일 수 없습니다. 그들의 리더십은 성육신하신 말씀이신 예수님과 영속적이고 친밀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의심도 없고, 복수심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미움의 기미도 전혀 없는 마음입니다. 단지 사랑을 주고 그 응답으로 사랑을 받기 원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 마음입니다. 엄청난 인간의 고통과 위로와 희망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신뢰하기를 거부하는 모습들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교회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역사는 사랑 대신에 힘을 행사하려는, 십자가 대신에 지배하려는, 인도받기보다는 인도하려는 유혹을 받아 온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이 유혹을 끝까지 이겨내어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흥미로운 분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분의 현존은 마음을 뜨거워지게 합니다. 그분의 온유함과 친절함은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분의 메시지는 매우 도전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우리 집으로 모셔들입니까?
삶의 잔을 마신다는 것은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을 우리의 삶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삶의 잔을 마신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 의미와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슬픔과 기쁨을 그대로 인정하고 내면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내가 내 삶을 통제한다는 환상을 갖고 싶어합니다.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 내가 다음에 할 일, 내가 성취하고 싶은 것,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내가 결정하고 싶습니다. 내 삶이 너무나 바쁘게 흘러가는 동안 나는 내 안에 계셔서 내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방향을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책에 귀기울이십시오. 성경을 읽고, 성경에 대한 책을 읽고, 영적인 삶에 대한 책과 위대한 성인들의 삶에 대한 책들을 읽으십시오. 흔히 우리는 지식과 정보에 대한 갈증을 느껴, 그 말씀이 당신을 소유하는 대신, 당신이 그 말씀을 소유하려 합니다. 그럴지라도,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가려 하시는 그 말씀에 귀기울임으로써 당신은 가장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매일 매순간 내게는 냉소주의와 기쁨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나는 모든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발견하고 있습니다. 기쁨을 택하면 더 많은 기쁨이 생기고, 그것은 삶을 아버지의 집에서 진짜 축하거리로 만들 더 많은 이유를 준다는 사실을
주님, 당신은 너무나 오래 참으십니다. 화를 내지도 않으시고 분노하시지도 않으십니다. 거기 서 계시며 내 손을 잡고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7
당신의 영이 내 존재 깊숙이 들어오실 때에만 저는 당신 안에서, 당신과 함께, 당신을 통해서 사는 한 인간, 곧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능력을 간구합니다. 이 능력이 제게 임하여 제가 가고 싶지 않은 곳까지도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진정한 제자로 변화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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