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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책읽기] 대학과 도시소소한이야기 2021. 4. 25. 23:15728x90반응형
대학과 도시
한 광야 지음
대학은 도시의 역사에서 축적된 지혜와 기술을 모아 비교하면서 더 유리한 지식과 테크놀로지를 개발해왔다. 대학은 먼저 신, 자연, 사람의 관계를 정리했으며 마침내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물을 만들어내는 이론들을 만들어냈다. 중세 유럽 대학이 축적했던 이론과 과학 덕분에 유럽 도시들은 자연 제약을 넘어섰고,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났으며 동양을 단숨에 앞질러 자유를 얻었다.
최근 일련의 정보통신 인프라의 보급으로, 과연 대학은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대학 커뮤니티는 역사적으로 사회에서 가장 창의적이며 현명한 집단이었다. 지난 2500년 동안 대학은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을 찾고 변화를 주도하며, 행태를 바꾸면서 기능해왔다.
아테네
서로 다른 환경과 현상에 관한 경험과 전쟁의 의미를 고민하고 이에 관한 이해와 생각을 전달 가능한 인간의 지식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한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아테네이다. 도시를 하나의 독립된 행정체계로 완성했던 대표적인 도시국가 아테네는 아프리카로부터 인도까지 확장하는 그리스 문화권의 황금기였던 고전시대를 주도했던 중심부였다.
아테네 성문을 지나서 파나텐 도로를 통해 아테네의 중심부로 들어오면 일상의 중심부인 아고라가 있었다. 아고라는 도시, 타운의 행정, 시민의 공공 생활, 상업 활동이 일어나는 넓은 평지의 공간이었다.
아테네의 교육 활동과 지식 생산의 거점인 아카데메이아의 출발점은 김나시온이다. 김나시온은 17~10세 청소년들에게 체육과 군사 교육을 하고, 방문강사들이 예절을 가르치고, 강의와 토론이 진행되는 장소였다.
김나시온
김나시온은 나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김모스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체력 단련, 공동 목욕, 학습을 위한 시설이다. 김나시온에서 학생들은 신에게 드리는 제사의 일환으로 나체로 운동했다. 김나시온의 일부 시설인 팔레스트라는 중앙의 코트야드를 중심으로 ㅁ 형의 주변 건물로 구성된 운동 시설이다
바그다드
평화의 도시로 불려왔던 링 모양의 바그다드가 우리에게 특별한 것은, 신도시로 형성되어 몽골 제국에 점렴될 때까지 약 500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며 이슬람의 황금시대를 완성한 지식의 전파와 생산의 중심부였기 때문이다.
아바스 왕조에서 우마이아 왕조를 거치면서 도서관이며 연구센터였던 바그다드의 지혜의 전당, 페스의 알카라읜 모스크 대학과 도서관, 카이로의 지식의 전당이 순차적으로 조성되었다
바드다드의 지혜의 전당은 페르시아, 그리스, 이집트, 인도, 아랍 문화권의 지식들을 수집하여 번역하고 비교하며 새로운 지식을 생산했다. 바그다드의 지식은 이후 남부 스페인으로 전파되어 농업혁명을 낳았고, 이후 서유럽의 르네상스까지의 중간 다리 역할을 햇다
바그다드는 793년을 전후로 티그리스강과 수로들을 따라 종이 공장을 조성하여, 당시까지 이 지역의 유일한 지식 저장매체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파피루스의 페르가뭄의 양피지를 대체했다. 바그다드는 이슬람 문화권의 종이 생산지로 지식과 부를 축적하며, 도시 내 일군의 마드라사사 도서관들을 조성하며 지식 확산 체계를 완성했다.
지혜의 전당
바그다드가 아바스 왕조의 수도로서 부를 축적하며 지식 생산의 거점으로 성장한 것은 8~9세기이다.
당시 바그다드의 기술과 지식 생산의 중심부는 사산 왕국의 도서관을 모델로 750년대에 조성된 왕궁도서관이다. 그리고 이 왕궁도서관은 다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모델로 조성된 지혜의 전당으로 성장했다.
바그다드의 지혜의 전당은 약 100년 동안 세 단계를 거쳐 성장했다. 지혜의 전당의 초기 기능은 지식의 소장하고 번역하는 것이었다. 이후 지혜의 전당은 번역된 자료의 비교와 검증을 통해서 당시 이슬람 문화권 학자들의 연구 기관으로 새로운 학문적 발견과 발명을 수행했다.
바트 아헨
바트 아헨으로 불려온 온천의 도시 아헨이 특별한 것은 600년 동안 프랑크 왕국과 신성로마제국의 심장부로서 거대한 제국 내에 통일된 교육과정을 확립하고 학교의 설림을 주도했던 카를링거 교육개혁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아헨은 이 시기부터 16세기까지 바젤, 아우크스부르크, 쾰른, 스트라스부르 등과 함께 제국의 자유도시로서 울 직물의 생산과 중계로 성장했으며, 이후 프러시아 왕국의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개발 거점으로 진화했다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교육개혁의 트리비움과 콰드리비움은 이후 설립된 유럽 대학의 표준 과정으로 자리 잡았으며 카롤링거 소문자는 유럽 내에서 표준화된 지식전달 체계로 사용되었다.
현재 아헨 공과대학이 설립되었고 이후 기계, 기차, 자동차 분야의 엔지니어링과 테크놀로지의 개발 거점으로 루르 지역 산업의 구조적 진화를 주도해왔다
빛의 도시 파리
빛의 도시로 불리는 파리가 우리에게 특별한 것은 6세기 초부터 조성된 가톨릭 수도원과 부속학교가 어떻게 파리의 시장과 대학의 형성을 주도하고 지식과 계몽의 도시로의 진화하는 데 기여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파리 라탱 구역의 생트준비에브 언덕 주변의 생트준비에브 수도원과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은 8세기에 왕과 파리 주교로부터 경제적 자치권을 확보하기 위해 교육 활동을 시작했으며, 특히 시테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부속 수도원학교가 성직자와 공무운을 교육하며 명성을 얻으며 라탱 구역에 첫 번째 기숙 시설인 콜레주데디쥐트를 시작으로 다수의 컬리지가 설립되어 연합체인 파리 대학을 구성했다. 당시 라탱 구역은 채색문서와 인쇄출판 활동을 통해 파리의 지식 생산 거점으로 성장했다.
파리의 라탱 구역은 1100년대 초부터 기존의 가톨릭 신학의 한계를 확인하며 거대한 지식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살레르노
온화한 겨울과 건조한 여름 기후를 가진 지중해의 휴양과 치유의 항구 살레르노는 고등교육과정을 갖춘 최초의 의학교로 평가되는 살레르노 의학교가 설립된 도시이다. 알렉산드리아가 고대 그리스로마 의학의 중심이었다면, 살레르노는 9~13세기 유럽 의학의 중심부로 히포크라테스의 도시로 불렸다
유럽 대륙에서 의료 전문인과 의학 교육이 체계적으로 성장한 계기는 십자군 전쟁이다.
살레르노 의학교는 당시 필요한 의료 인력을 교육하며, 노르만족 지배기와 신성로마제국 지배기를 통해 성장했으며, 특히 약물 치료를 목적으로 약초를 재배하는 유럽 최초의 보타닉가든인 호릍스 사니타티스를 운영했다.
살레르노가 지식 생산 거점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계기는 베네딕트 교파 주도로 793년 현재 산 베네데토 성당 부지에 베네딕트 수도원의 조성이다.
베네딕트 교파와 몬테카시노 수도원은 살레르노에 처음으로 학문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의학교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요소듣을 모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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