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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책이야기]도면으로 보는 한옥 설계집소소한이야기 2018. 12. 17. 00:18728x90반응형
예전에 본 한옥 관련 글에서 한옥의 도면은 좌우가 뒤집어져도 상관없이 멋들어진 집한채를 지을 수 있어, 이 점을 보고 프랑스의 어떤 건축가들이 놀라워 했다는 내용을 읽은 것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한옥을 소개하면서 그 집의 도면도 실어주고 있지만, 보았을 때 복잡해서 급히 시선을 거두어야만 하는 그런 도면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아래와 같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지금 남아있는 고택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 부분 중 단연 중간의 사대부의 집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고요
왕이 머물던 민가로 네 채의 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낙선재, 연경당, 운현궁, 강화 용흥궁
이 중 낙선재와 연경당은 창덕궁 내에 있고, 운현궁은 창덕궁에서 멀지 않은 종로구 운니동에 있고, 강화 용흥궁은 강화도령 철종과 관련된 곳입니다
낙선재는 다양함과 함께 화려함에서 소박함까지 두루 갖춘 집이다. 승정원일기와 낙선재 상량문에 기록된 것에 의하면 낙선재는 조선 헌종 13년, 1847년에 건립되었다.
창덕궁 후원에는 궁궐과 어울리지 않는 두 채의 건물이 있다. 바로 기오헌과 연경당이다. 연경당은 아버지 순조를 위하여 효명태자가 1828년 순조 28년에 지었다.
운현궁은 대원군의 개인 집이지만, 결코 궁의 권위와 위엄에 부족하지 않은 곳으로 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이 출생하여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성장한 잠저이기 때문이다.
산골에서 나무나 하고 농사를 짓던 청년이 왕이 되자 젊은 청년이 살던 초라한 초가는 갑자기 용이 일어난 용흥궁으로 변한다.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41번지.
사대부는 학문적 소양을 갖춘 학자적 관료를 의미한다.
사대부 집은 성리학적인 철학을 받아들인 신분과 남녀 공간배치의 구분이 눈에 띈다. 안채와 바깥채로 나뉘어 안채에는 여성공간으로 바깥채에는 남성공간으로 나누고, 엄격학하게 남녀의 생활공간을 분리하여 생활핟하도록 했다. 신분으로 공간을 나누기도 했다. 안채와 바깥채는 사대부의 주인이 사는 공간이었으며 행랑채에는 머슴이나 노비가 거주하였고 안채와 바깥채 중간에 이있는 중문간에는 중인곅계급이 거주하기도 했다.
사대부의 집으로 첫번째 소개된 집은 강릉 오죽헌, 율곡 이이가 태어난 신사임당의 친정집입니다.
오죽헌은 오죽이 주변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초기의 건물로 건축사적인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아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강릉 허난설헌생가터, 강원 강릉시 초당동 475-3
여성성의 학대에 맞서 싸운 허난설헌으 집은 아직도 남녀가 유별한 구조의 집으로 남아있다. 강릉 바닷가 모래밭이 길게 폎쳐진 옆에 솔숲 안쪽에 위치한 ㅁ자형의 배치를 하고 있으며 외부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거창 정온고택, 죽음으로 지조를 지킨 강직한 선비의 집
왕이 내려준 글이 지금도 걸려 있다.
일장산색벽차아 日長山色碧嵯峨
종득건곤정기다 鐘得乾坤正氣多
북거남래동일의 北去南來同一義
정금견석부증마 精金堅石不曾磨
세월은 흘러도 산은 푸르고 높으며
정의로운 기운은 온 천지에 가득하네
북으로 가거나 남으로 오거나 의리는 같아
금석같이 정결하고 곧음은 닿지를 않네
경주 교동최씨고택, 한발 물러서서 배려하고 사려 깊은 처학을 실천한 300년 가업의 최부자집
제물은 똥거름과과 같아서 한 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이 말은 12대에 걸쳐 3백년 동안 만석꾼을 유지한 최씨 잡이에 내려오는 말이다.
최씨고택은 원래 신라의 요석공주가 살았던 요석궁 터로 원효가 요석공주를 만나 설총을 낳은 곳이다. 현재 이 집은 최씨 후손이 살고 있으나 집을 비롯한 모든 토지를 기기부했기 때문에 영남대학교 재단 소유로 되어 있다.
최씨고택은 1700년경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집터는 2천 평 규모에 후원이 1만 평이나 될 정도로 넓은 99칸 집이었다.
최부자집에는 육훈과 육연이 있다. 육훈은 기본지침이면서 부자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행동지침이기도 하다. 모두 한발 물러섬의 행동과 배려를 둔 행동철학이었다. 육연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연의 이치를 몸으로 받아들이라는 사람의 근본을 깨우치는 가름침이다.
육훈
1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2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며 만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3 흉년에는 남의 땅을 사지 마라.
4 과객은 후히 대접하라.
5 느리들은 시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6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육연
자처초연 自處超然 스스로 초연하게 처신하라
대인애연 代人靄然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라
무사징연 無事澄然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지라
유사감연 有事敢然 일을 당햇해서는 용감하게 대처하라
득의담연 得意淡然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라
실의태연 失意泰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
고성 어명기가옥, 3칸 겹집으로 지어진 산간형 가옥구조
어명기가옥은 건축구조의 특별함과 변별성이 있는 평면이 3칸 겹집인 까치구멍집으로 폐쇄성이 강한 산간형 가옥구조를 가졌다.
광명 이원익고택, 경기 광명시 소하2동 1084
겸손하고 소박하게 산 사람의 후손은 사람이라는 큰 그늘을 가지고 살게 된다.
삶이 아름다우면 그 자취도 아름답다.
이원익은 황희, 맹사성과 함께 조선의 3대 청백리로 꼽힌 인물이다.
이원익은 높은 벼슬을 하고도 집은 초가 몇 칸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알게 된 인조가 집을 하사하여 현 종가가 있게 되었다고 한다.
괴산 김기응가옥
공간구성의 비밀스런 아름다움, 외벽 장식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가옥
건축 당시 구조물의 보존이 잘되어 있어 전통적 상류주택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괴산 청천리고가
권위와 위세가 보이는 높이와 규모의 집으로 송시열가문의 종가이다.
구례 운조루
조선의 건축을 맡아서 한 큰 장인으로 마음의 품도 큰 운조루의 주인, 유이주
유이주는 수원화성과 남한산성, 상담산성, 낙안읍성 등 주로 성곽 건축과 궁궐 공사를 담당했던 사람으로, 낙안군수로 부임하면서 구례에 운조루를 지었다.
운조루에는 특별한 점이 둘 있다. 대문 위에 걸려 있던 호랑이 뼈와 커다란 나무뒤주다.
운조루 雲鳥樓는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혜사에서 따온 글귀이다. 이 택호는 '구름 속의 새 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과 함께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운무심이출수
조권비이지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날기에 지친 새는 돌아올 줄 안다
남원 몽심재
노비와 종들을 위해 마련한 정자, 요요정이 있는 몽심재
몽심재는 조선후기 전북지방 상류의 전형적인 가옥형태를 잘 보전하고 있다.
몽심재는 신분의 상하구별이 엄격하던 조선시대 유교사회에서 하인들을 배려한 정자를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한 점이다.
논산 명재고택
초가에 살기를 고집하고 벼슬을 거부한 백의정승 윤증의 집
처사는는 벼슬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서 공부하는 선비를 가리킨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처사는 두 명으로 윤증과 남명 조식이다.
명재고택은 윤증고택이라고도 한다. 파평윤씨의 종가다.
논산 이삼장군고택
난을 평정한 공로로 영조가 이삼장군에게 하사한 집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하하사받은 이 집은 충청남도지정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담양 고재선가옥
슬로우 시티, 삼지천 마을에서 과거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고재선가옥
서둘러 간 사람이 놓치고 간 거것을 다 보고 갈 수 있는 것은 여유와 한가함이다. 마음 안에 평화를 들이면 세상이 다 다가오고, 마음 안에 욕망을 들이면 세상이 적으로 보인다.
고선재가옥은 전형적인 옛 남도 부농의 고택으로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행랑채 등이 잘 보전되어 있다.
대전 송용억가옥
대전이 자랑하는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호연재 김씨가 살던 집
송용옥가옥은 전체적으로 개방적인 배치를 하고 있어 충청지방 사대부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사대부 집의 전통적 구조양식을 지니고 있다.
송준길의 증손 송요화는 호연재 김씨의 남편이다. 호연재 김씨는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잇는 여류시인이다.
야음 夜吟
월침천장정 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
천영수성징 샘물에 비친 별및 맑은 밤
죽엽풍연불 안개 바람은 댓잎에 스치고
매화우로응 비이슬은 매화에 엉긴다
생애삼척검 삶이란 석 자의 시린 칼인데
심사일현등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조장연광모 서러워라 한해는 또 저물거늘
쇠모세우증 흰머리에 나이만 더하는구나!
대전 유회당
뒷산에 있는 부모의묘지에 제사를 지내면서 독서와 교육을 위해 지은 곳
유회당이 있는 무수동은 근심이 없는 마을이란 뜻이다.
유회당은 조선 영조 때 호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이 지었다. 유회는 부모를 사모한다는 뜻으로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는단다는 뜻이다. 권이진은 외조부인 우암 송시열에게서 22세까지 공부했다. 그 후에 고모부인 윤증에게서 수학하였다.
대전 제월당, 옥오재
마음 밭은 일구기 어려우니 호미질은 꼼꼼해야 한다는 송상기의 옥오재와 제월당
옥오재는 차라리 깨지는 옥은 될지언정 뜻을 굽히지 않겠다라는 신념에서 당호를 옥오재라고 지었다고 한다.
송규림이 유언처럼 남긴 글
남아의 사업은 태산과도 같나니
아홉 길 쌓는 공부 소홀히 할 수 있으랴
뜻은 쉬 달아나니 맹렬히 자제하고
마음 밭은 일구기 어려우니 호미질은 꼼꼼해야 하니
덕성 보존하려 하면 술을 멀리해야 하고
몸과 이름 세우는 일이 책읽기에 달렸다
세월은 한번 가면 다시 얻을 수 없으니
허망하게 늙어서 빈 그릇 탄식하지 마라.
보성 문형식가옥
땀 냄새가 나고 사람 냄새가 나는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고향마을 같은 집
봉화 남호구택
상해임시정부에서 군자금을 모금할 때 전 재산을 저당 잡힌 돈을 내놓은 인물의 집
봉화군 봉화읍 바래미 마을, 하상보다 낮은 바다 밑이었다고 해서 바래미, 해저라고 부르게 되었다.
바래미 마을의 또 하나의 고택
봉화 만회고택
파리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를 작성했던 유서 깊은 집
봉화 만산고택
영친왕의 한묵청련 글씨와 대원군이 쓴 만산이란 당호가 붙어 있는 집
조선 말기 문신인 만산 강용, 중추원 의관과 도산서원장 등을 지냈다.
부여 민칠식가옥
건축물의 일부 부재가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민칠식가옥
상주 오작당
양편이 익사처럼 된 지붕으로 용마루 모양이 H자형을 이룬 오작당
오작당은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집이란 뜻으로 후손들이 조상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잘못을 깨닫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지었고 한다.
상주 우복종가
청빈으로 초옥에서 살다간 정경세에게 정조가 내린 집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
가전충효 세수인경, 세종대왕이 손수 하사한 글
충성과 효도로 가문을 전승시키고 어질고 공경하는 마음을 지켜나가라
충효당이라 부르는 까닭은 이홍인의 충과 그의 8대손인 이한오의 효를 기리기 위해서이다.충효당종택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안동 의성김씨종택
아버지와 다섯 아들이 벼슬을 한 집으로 육부자등과지처이다.
안동 임청각, 군자정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되는 곳, 임청각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500년의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이씨의 대종택이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안동 퇴계선생구택
이황의 영향력이 조조선팔도에 미쳤지만, 생 안동과 영남은 퇴계의 사상적 중심이었다.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없어지고 현 종택은 이황의 13대손 이충호가 옛 종택의 규모를 참고하여 다시 지었다.
이황이 다니던 길을 '녀던길'이라고 하는데 '퇴계 오솔길'이라고도 한다. 퇴계 오솔길은 도산서원과 퇴계종택, 그리고 농암종택까지 이어진다.
안성 오정방고택
연속된 안채와 사랑채 중간에 담을 두어 안팎을 나눈 특별한 형태의 집
정무공 오정방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맹활약하여 선조의 신임을 받았던 명장이다.
여주 김영구가옥
경기도에서 보기 드문 ㅁ다형의 품위와 격조를 갖춘 집
영동 김참판고택
인공적인 집이지만 자연에 기대 자연의 숨소리를 반영한 집
한옥은 같은 지집이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같은 집을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자연의 지형을 이용해 지어져 산이나 들에 짓는 방식이 다르다.
영주 괴헌고택
은신처가 있는 아주 특별한 집으로 성주단지까지 전승되고 있는 집
회화나무가 가득하다는 뜻에서 이 집의 당호를 괴헌으로 지었으며, 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유물과 전통문화가 온전하게 보존, 전승되어 있다.
성주는 집안의 여러 신을 통솔하면서 집안의 평안을 다스리는 신이다.
예사산 이남규고택
여성공간인 안채가 전면에 있고 뒤편에 남성공간인 사랑채가 자리 잡은 집
예천 권씨종가벼당
대궐같은 풍모를 가졌으나 소박함을 받아들인 창의적인 개성을 발휘한 집
조선 중기 이후에 영남지방 사대부 집에서 채용했던 궁궐양식의 건물이라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정읍 김동수가옥
아흔아홉 칸의 전형적인 상류층 가옥으로 여서옹간이 강화된 집
청송 송소고택
조선후기 최고 갑부로 9대 만석지기 부자가 살던 건물
청송 평산신씨종책
새 사랑채가 바로 무문전에 위엄있게 있는 청송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
합천 묵와고가
오래된 집이라는 뜻의 무묵와고가, 고가라는 명칭을 넣은 것 자체도 특별하다.
윤사성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해남 녹우당
우리나라 국문학 사상 시조시인의 최고봉인 윤선도의 집
홍성 조응식가옥
중부지방 가옥의 평면구성에 남도풍이 가미된 집
집 앞에 연못이 조성되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어 놓았고 뒤로는 소나무 숲이 감싸고 있어 조선시대 가옥 특유의 조형미가 있다.
화순 양승수가옥
전체적인 집 모양이 등을 돌리고 벗어나려는 분산형의 집 모양
한통은 같은 모양과 구조로 지어지는 것으로 생각할할 수 있지만, 적응력이 뛰어나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한옥읻이다. 정형성에서 벗어나 가구구조의 무한한 변형을 볼 수 있다.
민초의 초가집
부안 김삼만가옥, 삼척 신리 김진호너와집, 일산 밤가시초가, 청원 이항희가옥
네 채의 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고 적응응력이 강한 건축물이 민초의 집이다.
부안 김상만가옥
인촌 김성수가 어린 시절을 보낸 초가집
초가집이지만 재목의 쓰임과 배치가 사대부 집의 면모를 갖춘 집이다. 사대부 집으로서 당당한 면모를 갖춘 초가집이다.
김성수의 양부는 당대의 거부였으나 조조촐한 집을 지었다.
삼척 신리 김진호너와집
춥고 높은 산간지방에 일종의 벽난로인 코클과 화티가 있는 너와집
너와집은 소나무와 전나무 등을 나뭇결을 따라 도끼로 켜서 만든 너와를 용마루 쪽에서부터 끝을 조금씩 물러 나가며 기와처럼 지붕을 이은 집이다.
김진호 너와집은 약 150년 전에 지어졌다.
방안에는 난방을 위하여 모서리 부분에 코클이라는 일종의 벽난로가 있으며 부엌에는 불씨를 보관하는 화티가 아궁이 옆에 있다.
일산 밤가시초가
조선후기 중부지방의 전통적인 서민 농촌주택의 구조를 원형 그대로 보여준다.
청원 이항희가옥
전통적 정원기법으로 꾸며져 고풍스러운 느낌의 정원이 있는 집
조선말 철종 때에 지어진 집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집이다.
전통적 건축기법에서 벗어났고 중앙통제가 악화된 상황에서 자유롭게 건축할 수 있는 시대적인 상황이 반영된 대표적 지주계층의 살림집이다.
상당히 긴 포스팅을 했습니다
책을 한장 한장 넘길 때 지루함이 끼여들지 못했던 만큼, 옮겨 보고 싶던 것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옥의 매력에 빠졌다면 한번쯤은 넘겨볼 만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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