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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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책읽기] 시읽기 고정희 탈상소소한이야기 2021. 6. 22. 23:06
탈상 구월입니다, 어머니 음력 보름달빛 낀 새벽 강물이 흘러갑니다 우수수수 음력 보름달빛 낀 새벽 들판이 함께 굽이칩니다 음력 보름달빛 낀 보석 같은 눈물들을 쏟아놓고 한여름의 상처와 슬픔으로 얼룩진 검은 상복 고이 벗어 한줌 재로 강물에 띄워보내고 나면 적막한 산하 옥수수밭 흔들며 가을의 전령들이 당도하고 있습니다 아득한 저 벼랑 끝에서 산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아득한 저 벼랑 끝에서 신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오, 우리 가슴속에 아직 검은 그림자 드리워 저 바람 지나기엔 이른 시간일지라도 보시지요, 어머니 구월이 왔습니다 지금은 마음의 상복을 벗고 지친 형제자매들의 팔다리 부축하여 황금 들녘에 기립할 때입니다 풀벌레 울음 소리 자욱한 일터에서 겸허한 씨앗들을 쓸어안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