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를입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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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책읽기] 고정희 수의를 입히며소소한이야기 2021. 6. 17. 23:27
수의를 입히며 논두렁 밭두렁에 비지땀을 쏟으시고 씨앗 여물 때마다 혼을 불어넣으시어 구릿빛 가죽만 남으신 어머니, 바람개빛럼 가벼운 줄 알았더니 어머니 지신 짐이 이리 무겁다니요 날아갈 듯 누우신 오 척 단신에 이리 무거운 짐 벗어놓고 떠나시다니요 이 짐을 지고 버티신 세월 억장이 무너지고 넋장이 부서집니다 굼ㅇ이란 구멍에 목숨 들이대시고 바람이란 바람에 맨가슴 비비시어 팔남매 하늘을 떠받치신 어머니, 당신 칠십 평생 동안의 삶의 무게가 마지막 잡은 손에 전류처럼 흐릅니다 당신 칠십 평생 동안에 열린 산과 들의 숨소리가 마지막 포옹에 화인처럼 박힙니다 얘야, 나는 이제 너의 담벼락이 아니다 흘러라 내가 놓은 징검다리 밟고 가거라 뒤돌아보는 것은 길이 아니여 다만 단정하게 눈감으신 어머니 아흐, 우리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