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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랑하는 주변인물을 통해 읽게 된 책입니다.
절판이라며 안타까워 하기조차 하길래 궁금해지더군요 이 책이
절판이라니 당연히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찾았습니다.
켄 가이거의 영혼의 창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중 작가 고도원의 서재에 소개된 책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종종 생각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갖고 있는 감각기관을 충분히 활용할 줄 모른다고 한탄하죠,
오감을 충분히 사용할 것!!!
이것이 개인적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하면 떠올리는 것입니다.
영혼의 창을 읽으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떠올린 이유는
작가가 우리의 오감, 그리고 거기에 영감을 더해 하나님을 느껴보라고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분의 다가옴은 말씀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다가감음 들음으로 시작된다. 그분의 찾음은 보이심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찾음은 봄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을 찾는 우리와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은 일상 생활의 창에서 서로 만난다.
이것이 영혼의 창이다.
영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이들에게 이것은 영적 훈련 같은 것이다. 실은 훈련 중에서도 혹독한 훈련, 즉 감수성의 훈련이다. 창을 보고 그것을 통해 들려 오는 음성을 들으려면 항상 눈여겨보고 귀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일상 생활의 창에서 서론 만난다.
감수성의 훈련이다.
항상 눈여겨보고 귀기울여야 한다.
제가 주목했던 부분들입니다. 삶이 예배가 된다는 것과도 통할 것 같습니다.
항상 눈여겨보고 귀기울이려면 작은 일에도 충성해야 할 것도 같죠.
'훈련'이라는 부분에도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자의적인 해석과 방법으로 빠지기에 딱 좋은 일로도 빠지기 쉬워 보이거든요, 영혼의 창을 통해 보는 일은요.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보는 법과 귀에 들리는 것 이상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소리는 때로 희미하고 그림은 때로 아득한 까닭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민감해야 한다. 창은 어디에나 있어, 언제 눈에 띌지 모르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가 그 창의 한 광경이 될 수도 있다. 그ㅓ나 그것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오랜 세월 우리를 찾으신 그분을 찾지 않는 한
장을 마무리 지을 때마다 기도가 있어요.
초월을 구하는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손 내미사
제 팔을 붙드시고 제 어깨를 치시며
모든 영혼의 창 앞에 멈춰 서 보고 들으라 말씀해 주심을.
그 창에서 뭔가를 보게 하소서.
이땅의 모든 일에서 천국을 보고 모든 이의 영혼에서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사랑하느나님, 신을 벗고 서도록 은혜를 주소서.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배어 있는 모든 것 앞에.
그냥 둘러앉아 야생 딸기나 따면서 삶을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양식을 위한 기도
오 하나님, 제 영혼의 갈망은 얼마나 모호한지요.
그러면서도 그 고통은 얼마나 쓰라린지요.
그 갈망을 채우는 건 고사하고 미처 이해할 수도 없는 저입니다.
오 하나님, 제 영혼에 가장 좋은 양식으로 머여 주소서.
하나님 향한 제 사랑을, 하나님과 함께 있고픈 제 갈망으
채워 주기보다는 더 갈급하게 하는 야식으로,
제 영혼에 심어 놓으신 모든 영원의 씨앗을 싹틔워 주소서.
그리하여 뿌리는 아직 이 땅에 있어도
제 삶에 부디 천국이 꽃피게 하소서.
여러 기도를 사진찍어 두었는데, 사진을 찍었을 때의 마음의 포인트가 잘 떠오르질 않네요.
내가 내 삶을 돌아보았듯 당신도 당신의 삶을 돌아보라. 당신에게 기쁨을 주었던 일들을 사진틀에 끼워 보라. 그림들이 보이는가? 들여다보라. 더 가까이, 더 깊이. 그 그림들은 창인가? 창이라면, 그 창으로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들리는 것은 무엇인가? 음성? 그 음성이 하는 말은 무엇인가? 지난 세월 당신을 불렀던 다른 모든 음성들보다 더 선명히 귀에 들어오는가?
영혼의 창을 보는 방법의 예시를 보여주는 구절 같아서 옮겨 봤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삶속에 산재한 창을 들여다 보면 여러 가지를 발견하겠죠. 그 발견들은 체험으로 이어질 수 있고요.
위대한 소설은 일종의 회심 체험이다. 우리는 변화된 모습으로 그 곳을 떠난다.
아동 소서라 캐서린 패터슨의 말이다.
변화는 인ㅅㅇ 전반에 대한 시각의 변화일 수도 있고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일 수도 있다. 생각하거나 보거나 느끼는 방식의 변화일 수도 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나 자기 집 안에 있는 사람을 보는 방식의 변화일 수도 있다.
나아가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의 변화일 수도 있다.
변화,
이 경험은 매우 중요하겠죠.
돌이킴으로 생각이 이어지기도 하네요.
변화와 돌이킴의 포인트 중의 하나가 '광야'이겠죠.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은 평탄 대로만 주시지는 않지만 선하신 분이다.
이것이 광야에서 내가 도달한 결론이다.
당시로서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일이지만, 나는 이 암울한 시절을 언제나 기쁨과 긍지와 믿음과 깊은 애정으로 기억할 것 같다. 바로 그 시절을 총해 패배를 딛고 일어섰고, 고된 삶 끝의 완성을 처음으로 맛보았으며, 나 자신의 삶의 공생과 아픔과 수고를 통해 주변 사람들의 삼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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